인더스 문명과 고대국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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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군가 제게 가장 관심있는 나라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저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인도'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인도는 앞으로 중국을 제치고 제2의 패권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죠. 아직도 산업화의 길이 멀어보이지만 제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인도 내에서도 이를 탈피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이어지고 있고, 미중 패권전쟁의 최대 수혜국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중위연령 층의 나이가 20대 중반으로 매우 젊은 국가이며(생산인구가 부양인구 초과, 이 말인 즉슨 큰 부양비 지출 없이 공격적인 투자 소화 및 고성장이 가능하다는 뜻), 전세계가 불황을 겪는 와중에도 홀로 연성장 11% 이상을 바라보고 있는 괴물같은 국가이죠. 미중 패권전쟁에서 누가 이기든, 인도는 이 둘로부터 떨어지는 파이를 주워먹어 강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국가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인도 역사의 시작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합시다.

 

목차

     

    인도 역사의 시작, 인더스 문명과 고대국가의 출현(B.C 4000~322)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 전인 1922년, 현재 파키스탄 모헨조다로에서 대량의 유적들이 발견되며 그 전에 발견된 하라파 유적과 함께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인더스 문명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사건은 인도 역사를 수 천년 뒤로 이동시키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죠.

     

    하라파와 모헨조다로의 유적이 발견되기 전까지, 인도역사의 시작은 아리아인이 인도 대륙에 들어오기 시작한 기원전 1500년경 출현했던 베다 시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인더스 문명 유적지와 상형문자

     

    상당한 수준의 고도화된 문명이었던 인더스 문명

    인더스 문명은 발전된 도시국가 문명으로 기원전 4000년에서 2000년 사이, 현재 파키스탄 지역인 인도 북서부 지역에서 번성합니다.

    인더스 문명을 하라파 문명이라고도 부를만큼 하라파와 모헨조다로는 가장 번성한 중심 도시들이었습니다.

    정비된 도로와 공중화장실 및 대규모 목욕탕까지 갖추었던 인더스 문명은 문자까지 사용한 상당한 수준의 고도화된 문명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도시들에서 발견된 남근모양의 석상들과 남근을 세우고 요가자세를 한 짐승들로 둘러싸인 형상들은 힌두교 시바신의 원형일 것으로 해석됩니다.

    아직 해독하지 못하고 있는 유적인 다량의 인장에는 황소, 악어, 코끼리 등 다양한 동물 모양을 한 수백여개의 문자기호도 발견되었습니다.

    철기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청동기와 토기가 사용되었고 유약을 사용한 도자기도 다량 출토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했으며 동시대에 존재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도 교역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인더스 문명을 건설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현재 남인도에 거주하고 있는 드라비니아인들의 조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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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더스 문명의 쇠락

    2000년 동안 번성했던 인더스 문명도 기원전 2000년 이후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습니다.

    인더스 문명이 어떠한 이유에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에 대해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있는데요.

    인더스 문명이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몰락했을지, 단기간에 어떠한 큰 재앙이 되었을지에 대한 어떠한 자료도 남아있지 않죠.

     

     

     

    인더스 문명의 몰락 원인 추정

     

    인더스 문명의 몰락 원인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가운데 학자들이 추측하는 문명의 붕괴 원인은 대략 세가지입니다.

     

    1. 천재지변에 의한 몰락

    2. 환경변화에 의한 문명의 붕괴

    3. 외적의 침입으로 인한 몰락

     

    아리아인들의 침입

    인더스 문명이 정점을 지나 서서히 쇠퇴해 가던 기원전 1500년경, 철기문화를 보유한 아리아인들이 인도 북서부 경계를 넘습니다.

    아리아인들은 말과 수레를 인도에 들여왔으며 활과 도끼를 사용하는 등, 원주민들보다 월등히 앞선 기술과 문화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초기 유목민이었던 아리아인들은 농업을 통한 정착으로 새로운 땅에서 환경에 적응해 나갑니다.

     

    키가 크고 하얀 피부를 가진 아리아인들은 작고 검은 피부를 가진 선주민들에 비해 우월함을 드러내며 곧 인도 대륙의 지배계층이 됩니다.

    선주민을 정복하고 동쪽 평원까지 나아갔던 아리아인들은 그들의 도시, 인드라프라스타를 수도로 건설합니다.

    아리안 사회는 인도의 중부지방인 겐지스강 유역까지 생활반경을 넓히며 초기국가형태로 발전, 도시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아리아인의 이주 이후 수백년동안 부족사회의 소도시국가 형태로 이어져온 인도사회는 서서히 국가 형태로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죠.

    B.C 7세기 이후 상당한 세력을 가진 국가들이 나타나며, 부족연맹과 전제왕권의 중간적 성격을 가진 국가형태를 지니게 됩니다.

     

     

    빔비사라 왕과 유적

     

    당시 아요디야를 수도로 번성한 코살라를 비롯한 주요 국가들은 주로 겐지스 강의 동부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도시국가들의 출현은 결국 전쟁을 통한 정복으로 이어졌으며 약육상식의 쟁탈전은 B.C 4세기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정복전쟁 중에 가장 두각을 나타낸 마가다 왕국은 5만여 부락을 지배하며 북인도의 정치적 중심이 됩니다.

    마가다의 위대한 왕 빔비사라(Bimbisara)는 부족장들을 누르고 강력한 왕권을 구축해 나가며 주변 소국들을 차례로 흡수하게 되죠.

    대제국 건설의 기반을 마련한 그는 결국 카시, 코살라, 비데하 등을 차례로 정복하며 명실공히 인도대륙의 최강자로 부상하게 됩니다.

    빔비사라 왕은 이 시기 갓 태동한 불교를 신봉하고 불법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불교가 인도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강력한 철기문화와 선진기술을 앞세운 아리아인에게 속절없이 무너졌던 선주민인 드라비다인들은 인도 남부와 동북부 산악지역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베다시대의 두 민족간 충돌은 사회문화의 혼합과 조화를 거쳐 다양성 속의 통일성으로 규정짓는 독특한 인도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가부장제와 카스트제도의 성립 등 아직까지 인도에 남아있는 사회, 문화적 관습들이 이 시대에 정립되게 됩니다.

    또한 이 시대에는 역사,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인도 역사의 가장 큰 유산이라고 하는 베다 문헌들이 형성되었습니다.

    베다는 초기 힌두교의 방대한 문헌을 가르키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4대 베다와 우파니샤드를 포함한 부속문헌으로 구성됩니다.

     

    4대 베다

    1. 리그 베다

    2. 사마 베다

    3. 아타르바 베다

    4. 야주르 베다

     

    부속문헌

    -아란야카스(숲의 서)

    -브라흐마나(제의 서)

    -우파니샤드(철학적 명상)

     

    아리안의 이주 후 시작된 베다시대는 사회, 문화적 기초를 마련하고 국가의 기틀을 닦기 시작한 매우 중요한 시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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