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달 시계, 리차드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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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끝판왕 브랜드, 하이엔드 시계들에 대해 아시나요. 파텍 필립, 오데마 피게 등의 브랜드들은 엔트리 모델 조차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는데요. 이 하이엔드 브랜드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긴 역사와 함께 성장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하이엔드 브랜드들의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리는 신생 브랜드가 있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엔트리 모델 조차 억단위를 호가하는 괴물 브랜드라고 합니다. 그 시계 브랜드의 이름은 바로 리차드밀입니다.

리차드밀은 어떻게 해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걸까요?

지금부터 저와 함께 알아보시죠.

 

목차

    리차드밀의 강점

    대부분의 시계 브랜드가 몇 가지 시계 모델을 만들어 놓고 수십 년간 컬러만 조금씩 바꿔서 재탕의 재탕에 재탕을 하는 것에 비해 리차드 밀의 시계에는 표준 모델이 없다고 합니다. 모델 마다 새로운 컨셉과 그에 맞는 새로운 소재를 들고 나온다는 겁니다. 시계를 자세히 보면 고급 스포츠카나 F1 자동차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창업자인 리차드밀은 자신의 시계가 마치 슈퍼카를 사듯 수집되길 바랬습니다.

    눈에 띄는 디자인 그리고 그 디자인에서부터 나오는 우월감, 그리고 최고의 성능까지.

    이러한 요소들이 합해지고 여기에 한정판이라는 요소를 더하여 만들어진 이 시계는, 중고 시장에서도 매물을 구할 확률이 매우 낮다고 합니다. 그가 원했던 대로 시계 고객은 주로 슈퍼리치들인데 이들은 리차드밀 시계를 마치 예술품 소장하는 기분으로 시계를 소장한다고 하죠.

     

     

    창업자 리차드밀과 그의 시계 - 리차드밀을 차고 있든 라파엘 나달 선수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리차드밀의 마케팅 전략

    리차드밀은 유명인 마케팅 전략에 특별한 전략을 사용합니다. 주로 유명 테니스 선수의 손목에 리차드밀을 채운다는 점인데요. 테니스는 팔과 손목의 순간적인 가속도를 이용해 경기에 임하는 스포츠입니다. 이런 종목에서 시계를 착용한다면 시계는 고장날 수 밖에 없습니다. 스포츠인들 입장에서도 시계를 차고 경기에 임하면 아무래도 거슬릴 수 밖에 없겠죠. 그래서 특히나 손목을 자주 사용하는 테니스 선수에게 시계를 채우는 일은 리차드밀 이전엔 없었습니다. 그만큼 내구성에 엄청난 자부심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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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파엘 나달

    라파엘 나달이라는 테니스 선수 중에서도 가장 예민한 선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그는 엄청난 결벽증적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선수인데요. 나달의 특징은 스트로크를 칠 때 순간적인 가속도로 스핀을 거는 것입니다. 리차드밀은 이러한 나달의 특징을 알고도 자신들의 시계 착용을 요청합니다. 나달이 리차드밀의 요구를 거절하는 건 당연할 수 밖에 없었죠. 왜냐하면 시계는 무거워 경기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리차드밀은 첨단소재로 A4용지 4장 정도 되는 무게의 튼튼한 시계를 만들어 라파엘 나달에 경기중 착용을 권합니다.

    그리고 나달은 결국 2010년부터 리차드밀을 차고 경기를 하였고, 나달은 리차드밀의 시계와 함께 수차례 메이저 대회를 우승하게 됩니다. 이렇게 리차드밀은 수집대상으로써 최고의 성능과 독특한 디자인을 인정받으며 탄탄대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창업자인 리차드밀은 도대체 어떠한 삶을 살아왔기에 이렇게 창의적으로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요.

     

     

    리차드밀 창업자 리차드의 삶

    리차드는 1951년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스무살 때 영국에서 영어를 배웠고, 이후 스위스에 있는 기술학교에 입학해 마케팅을 전공, 프랑스에 위치한 로컬 시계 메이커인 핀호르의 수출 담당 직원으로 일을 합니다.

    이후 핀호르가 프랑스의 대기업인 마트라에 합병되면서 그 또한 마트라에서 일하게 되는데요. 워낙 수환이 좋았던 그는 마트라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시계의 수출을 총괄하는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마트라는 시계 부서를 세이코에 팔아버리게 됩니다.

     

    하이엔드 시계를 만들고 싶었던 리차드밀

    이후 그는 회사를 나와 프랑스 시계와 쥬얼리 브랜드인 모브셍으로 이직을 하게 됩니다. 누구보다 자기 일에 대해 진심이고 열심이던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모브생 시계 총괄 매니저가 되고 시계의 설계와 제작까지 직접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중적인 가격에 대중적인 시계를 만들고 싶은 모브셍과 하이엔드 급이라는 가격이 비싸도 더 멋진 시계를 만들고 싶었던 리차드밀의 의견은 번번히 부딪히게 되었고, 결국 그는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며 꿈을 이루기 위해 회사에서 나오게 되죠.

    1998년 말, 리차드밀은 모브셍의 시계를 만들 때 무브먼트 공급 회사였던 몽트르의 소유주 도미니크 기나를 찾아가 자신이 앞으로 벌일 사업에 대해 설명합니다.

    '나는 모두를 위한 시계를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울트라 하이엔드 레벨입니다.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시계 가격을 비싸게 팔면 충당이 될 문제이니 만드는 과정의 비용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도미니크 기나는 시계 브랜드의 구상을 듣고 마음이 움직여 자신도 합류하겠다고 밝힙니다. 리차드밀은 이후 법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변호사와 오데마 피게의 무브먼트를 개발하기도 한 르노 앤 파피 제조사와도 파트너십을 맺게 됩니다.


    이렇게 1999년 리차드밀은 자신의 이름을 딴 시계 브랜드 리차드밀을 설립합니다. 리차드밀은 회사 설립 후 2년 동안 브랜드 콘셉트을 정비하고 전 세계에 있는 자동차와 비행기, 최첨단 제품들을 분석하면서 자신의 시계에 들어갈 수 있는 내구성 및 특별한 제품을 고안해 내죠.

     

     

     

    리차드밀의 첫 등장

    이렇게 만들어진 시계의 내구성을 테스트하고 2년여의 개발 기간을 거쳐 2001년에 최초의 시계, RM001투루를 바젤 시계와 가격을 박람회에서 공개합니다. 이렇게 세상에 처음 공개된 리차드밀의 시계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요.

    이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놀란 것은 가격이었습니다.

    무려 한국 돈으로 3억원에 육박하는 가격 때문이었죠. 한 번도 알려지지 않은 신생 브랜드에서 이런 파격적인 가격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죠. 놀랍게도 이 시계는 RM001투루는 순식간에 완판되었고, 주문계약만 수백 건이 넘게 되었습니다.

     

     

    마치면서

    리차드밀은 이렇게 등장과 함께 시계업계의 새로운 혜성이 되었습니다. 다음 해에는 RM002, RM003... 이런식의 모델명으로 계속해서 신제품을 출시하며 리차드밀은 슈퍼리치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 것입니다. 시계를 잘 만든 것도 대단하지만, 만약 싼 가격에 제품을 출시했더라면 부자들이 눈길을 줬을까 싶기도 합니다. 리차드밀은 부자들의 니즈와 마음을 잘 읽는 창업자라고 생각이 되네요.

    이후 13년도에는 케링 그룹(구찌, 발렌시아가, 네터 소유)이 리차드밀의 지분을 51% 사겠다고 제의했지만 리차드밀은 자신들의 길을 가겠다며 이를 거절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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