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 코로나의 인생, 자녀 교육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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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세계 최고의 IT 기업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일론 머스크는 요새 좀 여러 가지 평가가 엇갈리고 있긴 하네요. 90년대에서 이천년대 초반 중반까지는 최고의 IT 기업가 하면 이 사람만 거론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빌 게이츠죠.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세계 최고의 부자였고 세계 최고의 IT 기업을 창업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도 억만장자로 인기가 많았죠. 마치 만수르처럼요.

이 빌게이츠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만우절에 빌게이츠가 피살됐다는 거짓말이 돌았는데 그걸 언론사들이 받아서 기사로 잘못 낸게 또 다음 기자가 받아쓰고 하다보니 나라 전체가 떠들썩 했었습니다. 아무튼 이 대단한 빌게이츠는 창업하고 나서 1등을 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들을 찍어 눌렀다는, 심지어 좋은 일들도 많이 했는데 이게 사실은 뒤에 무슨 꿍꿍이가 있다. 사실은 모두 본인의, 사업상의 이득을 위한 일들이었다! 심지어는 그 일들 뒤에 놀라운 음모가 숨어있다! 그는 일루미나티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음모론 까지 나오기도 했었는데요. 무엇보다 가장 최근엔 이혼 때문에 전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천재 소년이 20대에 세계 최고의 기업을 창업하고 30대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뒤에 줄곧 최고의 자리를 떠날 줄 모르는 소프트웨어의 황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입니다.

 

목차

     

     

    빌게이츠의 인생

    유년시절, 그리고 귀인 폴 앨런과의 만남

    빌게이츠 1955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67살이죠. 아버지가 변호사였고, 어머니가 선생님이었던 빌게이츠 가족은 빌게이츠 아버지가 좋은 습관을 길러주겠다고 우연히 도서관을 데려갔었는데 빌게이츠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밥좀 먹으러 내려오라고 해도 책 읽느라 조금만 이따가 갈게~ 하고서 내려오질 않았다고 하네요.

    오죽했으면 저녁 먹을 때는 책 읽지 말아라 라고 얘기했다네요. 식사 중에도 책을 놓지 않았던 것이죠. 나중에 빌 게이츠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 가장 큰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몇 가지를 알고 싶어 했던 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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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책 많이 읽고 학교에서 공부도 아주 잘하고 특히 수학은 전교 최고 잘하고, 이후 중학교 때쯤부터 컴퓨터에 푹 빠졌다고 하죠. 그리고 그 학교에서 빌게이츠는 귀인을 만납니다. 컴퓨터 광이었던 2살 위인 같은 학교 형 역시 천재였던겁니다. 최소한 아이큐가 160 이상이라고 했던 컴퓨터 광으로 불린, 훗날 마이크로소프트를 빌과 함께 공동 창업한 폴 앨런이었습니다. 역시 친구가 중요하죠. 얘네들 둘이 같이 프로그래밍하고. 회사 해킹해서 보안 시스템 테스트하는 알바도 했다고 합니다.

     

     

    빌게이츠와 폴 앨런의 인생을 바꾼 컴퓨터 사업

    사람한테는 운명적인 순간이라는 게 있죠. 1975년 초였습니다. 빌이 하버드 대학교 2학년, 폴 앨런이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라는 잡지를 가지고 달려온 겁니다. 그 잡지 표지에 당시 혁명적이었던 개인용 컴퓨터 사진이 있었구요. 폴이 빌한테 달려와서 이런 개인용 컴퓨터란 기계가 있다. 우리 이걸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보자. 두 사람이 의기투합을 합니다. 그들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였고 여기에 빌게이츠는 한 술 더 떠서 컴퓨터 만드는 회사에 직접 전화를 합니다.
    아 여보세요. 전 하버드 대학교에 다니는 빌게이츠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습니다.
    소프트웨어 이름은 베이식이고요. 우리 작품을 사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근데 여기서 웃긴건 당시 빌과 폴 앨런은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소프트웨어는 개발중이었다고 하죠.

    일단 그렇게 일을 저지르고 나서 두 달 동안 밤새워서 막 미친 듯이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사업과 개발까지 병행하다보니 당시 학업은 뒷전이었죠. 아무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판매하기 위한 회사까지 세웠으니 그 회사 이름이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였던 것입니다.

     

     

     

    개인용 컴퓨터가 세계를 바꿀것이라 굳게 믿었던 빌게이츠

    20살이었던 빌 게이츠가 뭘 봤기 때문에 이렇게 움직였을까요. 훗날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가 크게 성공하고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게 빌게이츠가 이런 말을 합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은 이미 예정돼 있다고 믿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공에 대해서 아무런 보장도 없던 시절, 엄청난 모험을 감행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릴 비웃었죠.
    우리 역시 개인용 컴퓨터가 정확하게 어떤 용도로 쓰일지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우리 자신과 업계 전체를 변화시킬 거라고 믿었습니다.
    초기에 모험을 거부하면 나중에 시장에서 도태됩니다.
    하지만 크게 걸면 모험 중 일부만 성공하더라도 미래가 보장됩니다.

    빌게이츠의 엄마는 이런 아들을 믿고 그의 사업을 적극 지지해줬다고 하네요.

     

    재밌는 사실, 아버지와 약속을 지킨 빌 게이츠

    하지만 빌게이츠 아빠는 그렇지 못했다고 해요.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있는데 어느 날 빌이 자신에게 와서 아버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이 천금 같은 기회가 사라지고 말 거예요. 그러니까 아빠 저 지금 학업은 그만두고 사업에 매진할게요. 이렇게 말하는데 아버지는 이 때 아주 크게 실망했었다고 하죠.
    그리고 그때 빌게이츠가 나중에 복학해서 꼭 졸업장은 따겠다. 이렇게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수십 년 흐른 2007년 빌 게이츠는 하버드에서 명예 학위를 받을 때 연설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빠, 제가 돌아와서 학위 받을거라고 말씀 드렸잖아요.ㅋㅋㅋ

     

     

    어머니 덕분에 공룡 IBM의 파트너가 되다

    그렇게 빌게이츠는 베이식이라는 소프트웨어를 팔았습니다. 불법 복제 하지 말라고 직접 나서서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욕도 먹고, 소송전도 벌이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죠. 차차 마이크로소프트와 빌게이츠는 성장해 갔는데 1980년대 초에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당시 공룡 IBM은 막 커지고 있던 개인용 PC 시장을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요. 그 IBM에 빌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 체제를 공급하기로 한겁니다. PC 시장이 급팽창할 때 그 바람에 엄청난 기회가 생긴거죠. 그런데 IBM이 사업에 하루빨리 뛰어들고 싶어서 협력업체들에 기한을 당겨서 빨리 납품해달라 독촉하니까 준비가 안 됐는데도 마이크로소프트는 다른 사람이 급조한 큐도스라는 걸 사들여서 납품에 성공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사실 이 소프트웨어는 오류도 되게 많았었는데 일단 IBM이라는 큰 기회를 잡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판단을 했던 것 같습니다. 빌게이츠는 우선 일을 벌여놓고, 그러니까 큰 기회를 잡는 게우선이고 해결할 방법은 나중에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거죠. 이렇게 빌게이츠는 사업가적인 기질 또한 타고났다고 생각합니다.

     

     

    빌게이츠 이상으로 훌륭했던 그의 어머니

    그리고 IBM의 파트너가 될 때 또 다른 귀인이 힘을 쓰는데 그게 누구냐 하면 빌의 어머니였습니다.

    첫째를 낳고 교사를 그만뒀던 빌 게이츠의 어머니 메리 게이츠는 봉사활동 열심히 하면서 지역의 사교계 인사가 돼 있었죠. 남편도 잘 나갔지만 그의 어머니는 봉사단체, 후원단체 같은 단순히 봉사 후원만 하는 게 아니라 잘 나가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업적으로 일도 하며 친분을 쌓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빌게이츠 어머니가 있었던 봉사단체에 당시 IBM 회장이었던 존 오펠(사진 6번 참고)이 있었던 겁니다. 어머니가 이 회장 만나가지고 빌게이츠 얘기를 하면서 일이 잘 풀렸던 겁니다.


    빌 게이츠한테 어머니 같은 귀인도 또 없었던 거죠. 그리고 나중에 빌게이츠랑 절친이 된 워렌버핏을 만나라고 종용한 것도 어머니라고 합니다. 막대한 재산을 기부한 사람, 전 세계를 상대로 빌게이츠가 또 자선 활동을 하는 사람 이런 걸로도 유명하잖아요. 이것 역시 어머니의 영향이 없었으면 가능했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빌게이츠는 어머니 영향을 받아 이후부터 자선활동을 시작하였고, 결국 이는 자신에게 더욱 큰 이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요.

     

    당시 빌의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의 파트너가 되고, IBM의 PC가 출시 2년 만에 50만 대 가까이 팔리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운영 체제가 사실상 표준이 돼 버립니다. 윈도우가 90년대까지 휩쓸고 전 세계 운영체제 시장을 장악했죠. 31살의 빌게이츠는 억만장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욕도 엄청나게 많이 먹기 시작했죠.

    마이크로소프트가 다른 회사 것을 흉내낸다.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독점 기업이 불공정한 경쟁을 한다.

    아주 야비한 짓을 한다 등등.. 이렇게 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정부와 각을 세웠고요.

     

    그런데 이렇게 수많은 비난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선활동, 기부활동 이런것으로 많이 누그러졌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빌게이츠 어머니가 아들을 위한 선견지명이 확실히 있었던것 같습니다. 빌게이츠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빌의 사회성을 키워주려고 항상 강조한 게 있었다고 합니다.

    빌, 이번 크리스마스 때 네 용돈 중에 얼마를 기부할 거니?

    그리고 90년대 중반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빌게이츠 결혼식에 앞서서는 며느리한테 이런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너희 두 사람 인생에 대한 평가는 말이다. 결국에는 막대한 부에 따르는 특별한 책임을 인식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갈릴 거란다.

    정말 빌게이츠 이상으로 대단한 분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후 빌게이츠는 당신 인생 최악의 날은 언제였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빌게이츠가 답했습니다.


    제 인생 최악의 날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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