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몽 실제사례, 역사적 인물 "존 프랭클린"의 죽음을 예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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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영국의 유명한 해군 제독이며 탐험가인 존 프랭클린 경은 북극권에서 서북 통로를 발견하기 위해 탐험을 떠난다.

출발 당시 존 프랭클린 탐험대의 인원은 총 129명, 존 프랭클린은 현시대에 들어서는 북서 항로 개척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영웅으로 평가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목차

     

     

     

    그림은-존프랭클린의-탐험대-선박들-사진이다

     

     

     

    탐험을 떠난 후, 소식이 끊어지다

    존 프랭클린이 탐험대와 함께 그린란드 서쪽으로 간 지 2년쯤 지난 후, 무슨 일인지 그들의 소식은 완전히 끊어진다.

    사람들은 처음엔 그와 탐험대의 실종 사실을 믿지 않았다.

    존 프랭클린은 항해술에 뛰어났고 무엇보다도 바다 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베테랑이었기 때문이다.

     

    존 프랭클린의 부인인 제인은 이러한 여론을 이용하여 남편을 데려오기 위한 수색대를 조직하기 위해 외국의 저명한 인사들로부터 모금활동을 벌였다.

    이내 그들을 수색하기 위한 수색대가 만들어졌고, 탐험대의 행방을 찾기 위해 그들의 탐험 경로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수색작업에 난항을 겪다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색대는 탐험대의 시신 한 구 조차 수습할 수 없었다.

    그저 수색대는 킹 윌리엄 섬 해안 근처의 돌무더기에서 발견된 쪽지로 말미암아 그들의 사망만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

    그런데, 수색대가 조직되기 전부터 존 프랭클린 일행의 죽음을 계속해서 주장해오던 사람이 있었다.

     

     

     

     

     

    난파선의 사진

     

     

    윌터 스누의 꿈

    그의 이름은 윌터 스누.

    존 프랭클린의 절친한 친구였던 그는 존 프랭클린 일행의 소식이 끊길 무렵 꿈을 하나 꾸게 된다.

    인근에 널린 빙하들..

    부서져 버려진 것 같은 배..

    눈 속에 파묻힌 12구의 시신들..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탐험대를 진두지휘 했던 존 프랭클린의 시신까지..

     

    그의 죽음과 모든 상황이 어찌나 생생했던지, 스누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연필과 종이를 꺼내어 신들린 듯 자신이 본 모든 것들을 스케치했던 것이다.

     

     

    사고 현장은 윌터 스누의 스케치 묘사와 정확히 일치

    그리고 약 12년이 지난 1859년, 레오폴드 맥클린톡이 이끄는 탐험대가 윌터 스누의 말을 따라 그들을 찾기 시작하고, 결국 존 프랭클린 탐험대의 배를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

    레오폴드 맥클린톡이 이끄는 탐험대는 자신들이 본 것이 윌터 스누의 꿈의 예지처럼 얼음에 갇힌 파손된 배와 프랭클린의 시체, 눈 속에 파묻힌 시체 12 구까지 모든 묘사가 정확히 일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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